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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디자이너's 라이프

일본 주얼리 회사에 스카우트 취업 되기까지

by 큐큐이 2024. 1. 29.

 

 

 

 

사실  주변 사람들이나 후배들, 해외 취업을 원하는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어떻게 일본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어?" 이었던지라,오늘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포스팅해 보려 한다.

 

어떻게 일본 주얼리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어?

이 질문과 동시에 나오는 질문은 "유학 생활을 했는지" "일본어를 원래 잘했는지" 인 것 같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후, 일본 회사의 지사에 입사하며 언젠가 써먹을 수 있으니 공부해 두자 하고 JLPT 2급을 따 둔 게 전부였고, 유학 생활은 전무하다.
그러면 완전 한국 토박이가 어떻게 일본 굴지의 주얼리 회사 그것도 본사에 다닐 수 있었느냐.
정답은 악바리 근성과 기회가 올 때 바로 잡을 수 있는 준비성이었던 것 같다.

일본 회사의 한국 지사에 입사할 때 나는 여초 회사의 막내였다.
60:1의 경쟁률을 뚫고 6명을 뽑는데 최종 선발되어 한국 디자이너 겸 코디네이터로 입사했는데, 지사가 지어지기 전 약 3개월 동안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제일 어리지만 내가 제일 인정받아야지!! 그렇게 불꽃 여자의 열정에 불이 붙었다.

 

 

 


앞서 언급한 여초 회사의 막내는 참 쉽지 않은 포지션이다. 


가장 나이 차이 크게 나는 동기 입사 디자이너는 10살 차이였고, 서로 경쟁이 대놓고 치열해서 몇 번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을 때는 "네가 더 위로 올라가게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말도 면전에서 듣게 된다. 하하하... 무서웠다...


자 그럼 디자이너 겸 코디네이터란 무엇인가.앞서 말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가 디자이너 직무만 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내가 다닌 회사의 경우에는 청담동에 한국 지사 오피스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같이 있었기에 예약 손님이 올 경우 접객과 그 외의 시간엔 디자인 업무를 해야 했다. 

디자인 업무는 기성품의 개발보다는 브랜드 컨셉인 세상에 하나뿐인 디자인을 고객 눈앞에서 바로 그리고 제안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생각한 것과 의뢰받은 것을 그려내는 것이었다.하지만 초기 브랜드 인지도가 확립되지 않은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가격에 고객이 많진 않았고, 그에 반해 브랜드 자체의 특징이나 퀄리티, 모회사의 일본에서의 입지 등은 탄탄했기에 가능성을 본 백화점 입점 러브콜은 착착 들어오면서 회사는 쭉쭉 성장해 나갔다.

디자이너 6명은 원년 멤버였기에 일본의 집중 교육을 수개월간 받아왔었고, 브랜드의 철학과 일본과 브랜드의 접객 스타일 등을 공유하기 위해, 그리고 폐쇄적인 청담 본점보다는 유동성이 많은 백화점에서 더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자주 지원을 나가게 되었었다. 

하지만 이게 길어지고 잦아지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나가는 걸 거부하는 경우도 반발도 많이 생겼고, 그때마다 슬프게도 막내인 나에게 요청이 들어오게 되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지원에 거부감이 없었고 덕분에 신세계 강남, 롯데 본점, 신세계 본점 등 다양한 백화점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일본계열 회사 특징 중 하나인 서류 작업이 엄청나게 많았고 매일 처리해야 하는 게 많아 백화점 직원들의 갑작스러운 퇴사 등으로 결원이 생기게 되면 한 달 두 달 지원이 길어지기도 했었고, 원 인력이 없으면 2주 동안 내리 출근하는 경우도 있어 그게 좀 많이 힘들었었다.

 

 

 


나의 기회는 그 두 달째 신세계 본점에서 붙박이로 지원하면서 2주 동안 못 쉬고 출근했을 때 찾아왔다.


일본 본사에서 일본과 한국 디자이너 대상으로 디자인 컨테스트가 열린다는 메일이 온 것이다. 
주어진 보석들로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제안할 수 있으며, 최종 우승한 한명의 디자이너의 작품은 실물로 만들어지고 디자인 지휘를 위해 본사 출근 6개월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정말 그때 그렇게 절실히 이게 기회다, 이걸 절대로 내가 잡아야 한다. 라고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백화점 전일 근무를 하고 집에 가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정말 한 시간도 안 자고 그렸고, 다음날이 밝아와 지원 근무를 하러 출근했다. 그렇게 또 접객하고 직원 휴게실에 가서 마저 아이디어를 다듬은 후 퇴근 후 밤새 그걸 스케치로 옮겨서 3일째 컨셉을 설명하는 글과 함께 제출했다.


그렇게 삼일을 꼬박 일하고 잠을 못 자면서 준비한 그 디자인은,  몇 주의 심사 후 최종 당선 되었다.


그렇게 일본 출장의 기회를 잡았고, 가서는 한국 시장을 겨냥한 예물 제품 개발에 투입되었다. 

일본어를 나름대로 공부하고 자격증도 땄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될 거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전혀 말할 수 없었다. 마치 토익 900점이라고 해서 쏼라쏼라 말하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일까? 그래서 처음 몇개월 동안은 회사 갔다가 숙소에 들어오면 (먼 슬리 맨션을 회사 측에서 마련해주었었다)인터넷 강의로 비즈니스 회화를 따라 하고 디자인하다가 잠들었고, 다음날엔 즐겁게 일어나서 전날 배운 일본어를 가서 말이 되든 안 되든 회사 사람들에게 써먹으며 지냈다. 정말 아는 사람도 없고 친한 사람도 없었지만 꿈만 같은 하루하루에 회사를 못 가는 주말이 싫었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고 개발 상품이 픽스가 되고 선정된 디자인이 형태를 디자인이 형태를 잡아가게 시작할 때쯤 회사에서 미팅 요청이 왔다. 앞으로 약속된 기간이 2개월인데, 지금 시점에서 일본 본사에서 너를 정식으로 채용하고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그때의 그 해냈다는 짜릿한 기분이란! 

 

아직도 생각하면 흥분된다.그렇게 소속 이전과 한국 지사의 퇴사 수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한 1~2년 정도 지내다가 돌아와야지 했던 내 생각과 달리 그때부터 8년간 일본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사실 운이 가장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 2주 동안 지원을 내리 나가서 피곤하다고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어차피 일본 디자이너 디자인으로 채택일 거라고 하고 포기했다면, 출장 가서 6개월 편하고 즐겁게 관광객 상태로 지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결국은 근성이 답인 것 같다. 

그때 나만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진 않았겠지만 반대로 나는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그렇게 할 자신 없을 정도로 후회 없이 나를 갈아 넣었기에,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던가.
글을 쓰다 보니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육아랑 병행하기에, 브랜드가 2개나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과연 지금의 나는 저 때의 나의 반만큼은 하고 있나 라는 생각도 들어 반성하게 된다. 그때처럼 하면 병들 거 같긴 하지만 근성 회복해서  2024년은 둘 다 궤도에 올려보자!!
블로그 프로젝트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