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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디자이너's 라이프

일본과 한국 주얼리 회사 근무 비교

by 큐큐이 2024. 1. 29.

사진: UnsplashKelly Sikkema

 

 

 

사실 제목을 쓰긴 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나라별 특징이라기보다 엄연히 회사별 특징이라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기록.

나의 주얼리 디자이너로의 활동 경력은 다음과 같다.



1. 보석디자인과 졸업 후,


2. 이탈리아 주얼리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엠디와 새끼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2년, 


3.그 뒤에 일본 브라이덜 주얼리 회사의 지사에서 오트 쿠틔르 디자이너 겸 코디네이터로 2년,


4. 그 뒤 일본 본사에서 러브콜을 받아 교토로 건너가게 되었고 원래 6개월만 출장이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8년을 일본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다가 (이 이야기는 추후 자세히) 


5. 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지사로 역수출되어 2년 근무, 육아 휴직 후 일여년간 복직 


6. 한국 패션 주얼리 회사에 이직,


7. 그리고 개인 브랜드 2개 런칭 후 지금 운영 중이다.



고로, 한국에서의 경험은 이탈리아 회사의 지사 2년, 일본 회사의 지사 약 3년, 한국 회사 1년의 총 6년이 다겠고, 해외 경험은 8년이 되겠다. 기억을 더듬어 가보겠다.

일단 첫 회사는 졸업 전 첫 이력서 등록하고 난 후, 그쪽에서 면접 요청이 와서 가게 되면서 취업하게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엄청나게 긴장하고 평생 안 입어본 엄마가 사준 요조숙녀 같은 분홍색 코트를 입고 올림머리를 하고 성수동에 면접하러 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업무는 "디자이너" 이자 "엠디" 이자 "매장지원"이었다.이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라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디자이너라고 쓰고 만능 잡부라고 쓰면 너무 비하일까. 막내일 경우는 더욱 엄청나게 엄청나다. 

잔심부름과 잡일과 거래처 관리와 매장관리는 물론이고 비품 정리, 매장 소통, 디자인과 업체와의 소통, 세금계산서까지. 도대체 한명 뽑아서 엄청나게 뽑아 먹는다. 좋게 말하면 다 경험이고 다 나에게 공부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한다. 내가 원치 않더라도.


어쨌건 나도 그렇게 배웠고 사실 난 당시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 했던 의욕 왕이기도 했고 다 그렇게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신제품 시즌이 오면 이탈리아 본사 카탈로그에서 제품을 선정하는 작업에도 참여했고, 백화점 매장에서 인원이 모자라면 그걸 메꾸러 지원도 몇주~몇개월 나가기도 했다. 아 물론, 표면적인 구실은 제품에 대해 더 잘 알고 고객들의 반응을 이해하여 디자인에 도움이 되기 위함이었다.


디자인 업무는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디자인 실장님이 제대로 들어오시고 나서였던 것 같다. 거의 보좌역할로 있다가 1년이 지나고 보석에 대해 좀 더 지식이 생기고 실장님과 발이 맞고 실장님 스타일을 파악하고 나서부터 그녀의 눈이 되어 종로에 다니며 원석을 체크하고 업체와 소통하며 그렇게 처음으로 디자이너다운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보통 대학교 때 생각하는 디자이너란 트렌드를 체크하고 연구하고 여러 디자인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최상의 디자인을 뽑아내는 사무직에 가까운 이미지였는데, 주얼리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일본 주얼리 회사 환경이 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다닌 회사의 경우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확실히 메인이었다. 

 

더 좋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 업무시간에 타사의 홈페이지를 서핑하거나 구글링하는 건 너무나도 중요한 업무기도 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직접 보고 싶은 브랜드가 있거나 재료가 있으면 상사에게 이야기하여 출장 계획표를 내었고, 출장비가 주어졌다. 


디자이너 출신이었던 회장님은 디자인 능력이 곧 회사의 힘이라는 생각이 강하셔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셨다. 덕분에 파리 출장과 비엔날레도 가보고 엄청나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걸 흡수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내내 앉아서 그림만 그리진 않았다. 매주 한두 번씩 있는 디자인 전개 회의에서 상사들과 부서장들을 설득하기 위한 회의 자료를 다양하게 준비하여야 했고 브리핑해야 했다. 

외국인이었지만 외국인이라 잘 못한다는 (특히 묘하게 한국 일본 간의 감정도 있었으므로) 이야기는 죽어도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회의자료 준비,시장조사 ,시장 파악, 장인들과의 소통, 컨셉 스토리 텔링.이외의 업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말하지만 운이 참 좋은 편이다.

 

 

 


[결론]


한국에서의 경험은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맷집을 키워주고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준 점에서는 좋았던 경험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메리트가 있지 않았다. 특히 왕왕 들려오는 업계 소식 같은 경우는 종로에서 디자이너로 취업했는데, 혹은 나름 큰 주얼리 브랜드에 디자이너로 취업했는데 내려오는 일이 다른 브랜드의 베스트 셀러 디자인 카피였다 라는 이야기가 많아, 참 속상하다. 그래서 업계를 떠나는 인력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의 경험은 그게 첫 회사였다면 디자이너로서의 성장 외에는 전체를 보기 힘든 구조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질 수 있었겠지만 다행히 한국에서 다양하게 굴러다니다가 간 곳이었기에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정말 말도 못 하게  소중했다. 온전히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고 집중적으로 서포트해 주기도 한데다가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내가 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섬세한 시각이나 다른 포인트를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 회사가 있을 수 있다. 요즘엔 더 그럴지도.어찌 되었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기록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