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위큐이 시작에 관한 피드에도 살짝 이야기했지만, 나의 주얼리에 대한 관심은 라이프 사이클과 일치한다.
한창때(?)는 내가 직접 착용할 예물과 더불어 기술과 디자인의 극치인 하이주얼리에 심취하였고, 아이가 생기고는 베이비 주얼리와 미아 방지 목걸이에 관심이 생겨 위큐이를 오픈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아이가 크고 다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가 착용할 어디에나 어울리면서 툭 걸쳤을 때 멋스러움이 배가 되는 주얼리에 다시 눈이 가게 되었다. 참 나도 단순한 것 같다.
사실 첫 입사부터 마지막까지 14k도 아니고 18k와 고순도 플래티넘,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프리셔스 스톤만을 사용하는 회사들을 전전했기에 실버나 브라스 소재 주얼리에 대한 지식이 비교적 없었고, 아는 루트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퇴사 후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그 두 가지, 14k와 실버를 취급하면서 매스한 디자인과 합리적인(저렴한) 가격대를 잘 파는 회사였다. 완전히 다른 시장이기도 했고, 새로운 걸 배우고 싶기도 했다.
운 좋게 바로 가고 싶었던 회사에 바로 이직할 수 있었고, 다시 모든 걸 해야 하는 한국 디자이너의 라이프에 뛰어들었다. 디자인 팀장으로 입사하였었는데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똑똑하고 착한 어린 팀원들과 즐겁게 일했고, 회사 전체 분위기도 영어 이름을 불러가며 비교적 수평적이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기획과 디자인 위주로 작업하고 책임지던 환경에서 발주,디자인, 원가계산,촬영기획 등등 모든 것을 낯설어하면서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팀원들의 서포트가 가장 컸다고 본다. 다시 한번 제니,페기,레이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진득이 14년이나 한 회사를 잘 다녔던 내가, 심지어 알게 모르게 한국인에 대한 무시가 살짝 깔려있던 일본 회사에서도 잘만 버틴 내가,마지막으로 다녔던 한국 패션 주얼리 회사를 1년 만에 그만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코로나로 인한 육아 이슈와 직원을 소모품처럼 생각하고 말을 가리지 못했던 대표, 그리고 그 옆에 바른말 못 하고 아부하는 떨거지들이 보기 싫었다. 하하하…
회사 대표는 정말 많은 걸 이룬 똑똑하신 분이었지만, 성장에 대한 욕구가 너무 급했던 건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었다. 나한테 직접적으로 어떤 발언을 해서 상처받은 건 아니었지만 팀원들이, 그리고 다른 팀 사람들이 상처를 가득가득 안고 있었고, 그런 점이 잘 안 맞았던 것 같다. 근데 이건 대표의 마음이란 게 결국은 매출이 일어나야 월급을 주고 잘 꾸려나가는 거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장 많이 화가 났던 건 그 뒤에 숨어서 일은 안 하면서 사람들 이간질하던 아가리 파이터들이었다. 음... 말이 격해졌다. 암튼 그렇게 마음이 여러모로 떴고 체력적으로도 지쳤던 것 같다.
더 큰 이유였던 건 아무래도 코로나 이슈·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고, 걸리는 것도 무서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이의 어린이집 비상사태가 너무 자주 걸려 잦은 결석과 조퇴를 해야 했고 하원 도우미 이슈도 있었다.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하원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몇번이나 다시 찾고 면접하고 아이와 연결해도, 짧게는 한 달 길어도 7개월 남짓이었던 것 같다. 한 분은 코로나에 걸려 그만두셨고, 한 분은 체력 문제로, 한 분은 아이를 책임감 있게 보지 않으신게 밝혀져서 그만두셨다. 주 4일에 단축근무, 재택근무를 허용하면서까지 기회를 준 회사에도, 한 도우미 분과 진득하고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내길 바랐던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워킹맘의 비애라고 할만하다. 그래도 누굴 탓하겠나, 내가 선택한 길인데.
암튼 그렇게 두 가지 이유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딱 1년 만에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개인 브랜드를 준비하게 된 게 바로 샴브리에다.사실 1년 정도는 더 다른 회사에서 여러 경험을 하고 좀 더 총알도 준비해 둔 다음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내 나이에 내 연봉을 폐쇄적인 주얼리 업계에서 달가워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바로 사업모드로 전환하였다. 사실 어디든 가려고 이력서 내면 한 번에 될 거라는 나름의 근거 있는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자존심도 상해보고 현실도 맛보며 원래 계획보다 1년 일찍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경험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하하
사실 쉽게 가려면 알고 있는 여러 업체에서, 한국에서 오래 일해 이미 마당발인 업계 친구들에게서 물건을 받아 14k 온라인 몰 정도 오픈하는 게 편했을 수 있었지만, 그걸로는 디자인 갈증이나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끼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뭘 잘하고 어떤 걸 좋아하나 생각해 보았다.
예전부터 빈티지 주얼리를 좋아했고 볼드하기도 하면서 저런걸 누가해 하는 디자인을 골라 착용하던 전적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과감한 걸 만들어보자 싶었다. 예술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대중성보다는 니치 한 느낌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할머니들-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정말 멋쟁이셨다. 어디 가셔도 연세보다 훨씬 어리게 보았고, 멋진 수트를 입으시며 주얼리로 포인트를 즐기실 줄 아는 분들이셨다. 그중 친할머니는 일본 분이셨는데 종종 놀러 가면 다다미가 깔린 할머니 안방에서 주얼리 상자를 꺼내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시곤 했었다.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하시고 멋쟁이셨냐면, 향수는 샤넬 넘버5를 즐기셨고 백발이 되셨을 무렵엔 예쁜 연보라색으로 물들이셨을 정도였다. 따스한 햇볕이 길게 들어오는 향기 좋은 방에서 구경하는 빈티지 주얼리에 매료되던 그 순간순간들의 기억과 후각이 생생했다.
그래서 처음엔 할머니의 감각과 나의 추억에 대한 오마주로 할머니의 방을 프랑스어로 바꾼 버전 - Chambre de meme으로 진행하려했지만! 프랑스인에게 물어보니 meme 가 좋은 뉘앙스가 아니었고,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담겨있는 이미지- 빛나는 방이라는 뜻의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뭐든 한 번에 딱딱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적으로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편이긴 하지만 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이제는 비로소 그 과정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는 연배(?)가 된 것을 감사한다. 앞으로도 이리저리 굴러가고 돈도 날려보고 시행착오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멋진 결과로 가는 길이겠지 하면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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