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더메이드 베이스의 미아 방지 목걸이 실버 브랜드 '위큐이'는 출산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일본 주얼리 회사에 10년 차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행복하게 근무하다가 결혼하면서 한국 지사로 건너오게 되었고, 그렇게 신혼을 보낸 뒤 1년 후 찾아온 '반짝이'.
같은 업계에 비해 좋은 환경과 배려를 가진 회사였고, 거기다가 일본 본사에서 수년간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인정받고 건너온 터라 온갖(?) 임신 혜택은 다 쓰고 받으면서 막달까지 잘 다니고 1년 반의 출산 휴가에 들어가게 되었었다.
사실 나의 주얼리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었다.
일본에서 거주하시는 친할머니네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아빠도 다녀오실 때면 늘 잡지를 사다 주시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시계와 주얼리 전문 잡지였다.
처음 눈이 휘둥그레졌던 건 초호화 보석 시계와 진주 브랜드 - 콕 집어서 미키모토.작고 아름답고 빛나고 가치가 높으면서 자산으로도 미적으로도 완벽하다는 점에서 반했고,그렇게 매번 아빠가 일본 가실 때마다 잡지를 부탁드리며 자연스레 주얼리 디자이너가 꿈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얼리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내 라이프 스타일과 시기에 따라 달라졌던 거 같다.
고등학교 때는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움의 기준 정석이었던 고풍스럽고 화려한 진주 주얼리와 주얼리 워치, 취업할 때 즈음해서는 패션 주얼리에 관심이 갔고, 결혼 적령기와 연차가 어느 정도 찼을 때는 브라이덜과 하이주얼리에 눈을 떴었다.
일본 주얼리 회사도 일본에서 알아주는 브라이덜 회사이자 할리우드 레드카펫에서 세계에서 사랑받는 여배우들이 착용하는 몇억을 호가하는 하이주얼리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난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그렇게 다니다가 아이가 찾아오고 이제 낳고 나서 보니, 아무래도 이제 내 예물은 이미 다 했겠다, 그렇다고 하이주얼리를 내가 착용할 것도 아니고 한국지사에서는 디자인을 계속해 나갈 환경도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아이가 착용할 주얼리에 대해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냥 막연히 내 아이가 착용할 디자인은 어떤 게 좋을까, 무슨 디자인을 해서 착용시킬지 정도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몇 달이 지나고, 조금씩 좀이 쑤셨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몸도 아직 돌아오진 않았지만 혼자 오래 살았던 것도 있고 내 시간이 필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본 게 국가지원 배움 카드. 주얼리 디자인보다 세공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내가 만들고 싶은 이것저것도 사부작거리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약 6시간씩 종로의 세공학원에 나가 손목 보호대를 차고 은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반짝이를 봐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생각은 학원은 참 좋았다.
어린 친구들도 의욕이 넘치는 여러 나보다 높은 연배의 분들도 보였는데 어찌 되었든 의욕과 새로운 걸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넘쳤다. 애 낳고 손목을 망치질하는 데 쓰는 게 잘하는 걸까 했지만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었으니 뭐 괜찮았다고 치자.땜하고 톱질하고 두드리며 머릿속엔 온통 뭐를 만들어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사탕 모양, 풍선 모양, 동물 모양...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황금개띠에 태어난 아이니까 강아지 모양으로 일단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만들어보았고 가장 예쁠 것 같은 디자인을 결정하고 캐드로 넘겼다. 역시 나는 만드는 거엔 그리는 것만큼 소질이 없는 듯했다. 하하하...
그렇게 탄생한 게 '테디 퍼피'. 나는 비숑 프리제를 모티브로 했지만 보는 사람 모두 이거 곰돌이구나!? 이거 양이야? 물어보는 사람이 90%... 누구나 아는 형태의 강아지로 하긴 싫긴 했지만 그래도 강아지로 봐주면 좀 더 즐거웠을지도...? 어찌 되었든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스타일로 간다고 하고 진행하였고 그렇게 완성되었다.
내가 보기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주얼리.
수십만원에서 수억원짜리 주얼리를 디자인했었어도 이렇게까지 착용감에 신경 쓴 적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약한 살성의, 착용감이 안 좋아도 아프다 불편하다 말 못 할 아가가 착용할 거니까 까끌까끌하거나 뾰족하거나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체인도, 펜던트도 뒷장식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완성된 '테디 퍼피'를 보고 있자니 이 사랑스러운 것을 (고슴도치 엄마 마음) 나만 알기 싫고 자랑하고 싶어서 인스타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닿게 되었고, 인스타 계정을 파려면 이름이 필요하기에 사실 대충 남편이 나를 부르는 애칭 '큐이'가 어떨까 하다가 너무 짧고 해서 스스로 잘했다, 그래그래 라는 의미로 'oui'를 앞에 붙이면서 '위큐이'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계정을 파서 이름을 붙이고 소심히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소소한 피드를 올린 게 위큐이의 작은 시작이었다. 한명 두명이 누르면서 구매를 원했고 지인들도 원하면서 이게 좀 가능성이 있나 싶어 더 신나게 이것저것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것저것 만들어댔고 그중 반 이상은 별로였고 어떤것은 또 너무 괜찮기도 하고. 그렇게 초보 엄마의 부담감과 지침에서 나를 조금씩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피드는 허접한 사진 실력이지만 조금씩 올라갔고 가물에 콩 나듯 가끔 구매 문의가 들어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복직하게 되며 위큐이 자체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냥 한번 해본 취미 정도? 본업과 초보 엄마만으로도 매우 벅찼다.그러다가 이직하고 코로나와 하원 도우미 이슈로 퇴직하며 위큐이를 제대로 한번 시작해 보자 한 게 2022년 2월이었던 것 같다.
디자인을 재정비하고 스마트 스토어를 열고 인스타를 조금씩 배우고 시간을 쏟았다.
한명 두명 생긴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각자 원하는 게 다른 걸 알았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나처럼 그들도 내 아이가 의미 있는 주얼리를 가지고 싶은 절실한 마음을 아니까 엄청 세세히 상담하며 하나하나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더메이드 시스템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사실 한가지 디자인을 대량생산 해서 각인한 해서 나가면 참 편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시간을 들이고 누군가에게 마음에 쏙 드는 하나뿐인 디자인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그 편함을 이기고 더 나아가 직업 소명 의식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앞으로 더 보완하고 더 크기 위해서 더 다양한 상품구성도 구비해야 하고 지금 있는 것들도 보완해야겠지만 헤매고 속도 상해가며 반짝이와 동시에 키워온 나의 제대로 된 첫 브랜드라 애정이 깊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위큐이'에 대한 즐겁고 소소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남겨가야겠다.